중국의 MIT 라 불리는 칭화대 정문 앞에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 이라는 글귀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스스로를 쉼 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쌓은 뒤에 물질을 꾀한다’는 말이다. 칭화대 학생들에게 이 어훈은 졸업한 후에도 잊지않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 같은 말이다.
지난 2002년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칭화대에 다니던 친구에게 이 어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학교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어훈과는 다르다. 졸업한 후에도 가슴 속에 남아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늘 자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창하지만 과학은 인류를 이롭게 해야 하기 때문에 덕이 없는 인간이 만드는 과학은 쓸모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칭화대 관계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인재 양성의 모토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서면 답변서에는 "과학자의 자질을 기르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지적한 것이 다양성과 창조성이었다.
역시 어훈과 연결되는 말이었다. 과학자는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진보하게 하는 기술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 덕과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 뿐 아니라 인문과 교양을 두루 공부하는 다양성이 구비되야 하고 그 융합 속에서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칭화대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칭화대가 과학자 뿐 아니라 많은 사상가와 문학의 거장,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를 배출했으며 융합 속에서 더욱 새로운 기술이 창조된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카이스트의 개혁 핵심인 경쟁 속에는 "인격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과 새삼 비교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학생을 공부기계 로 만들려고 수업료로 위협하며 비극을 낳게 한 장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서남표 총장이 인격 말살 교육을 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박홍 전 서강대 총장도 "한국이 외국 명문대의 실패 케이스를 뒤쫓아 가고 있다"며 "인성, 인격 교육을 다 포기해 버리고 지식 교육만을 받은 절름발이 인간이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인간을 만들어야 과학자가 나온다는 칭화대의 교육 이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성과내는 칭화대 ...카이스트는?
선저우 6호 발사 장면. 선저우 6호 기술자들은 대부분이 칭화대 출신이다. 출처=장양군사
서남표 총장은 교육개혁을 시작할 무렵 한 신문사 시론을 통해 정부 투자만이 한국 대학을 세계화 할 수 있다는 글을 썼다.
그는 칭화대는 최우수 학생들이 모였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 지원이 충분해 머지 않아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한국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은 투자를 통해 더욱 성장하게 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칭화대가 정부의 명문대학 지원정책의 최대 수혜 대학임은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중심 무대로 부상한 중국 지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학 출신이다. 칭화방 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들의 이름 만으로도 학교에 거대한 뒷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 중국 경제개혁을 이끈 주룽지 전 총리, 제4세대 지도부를 이끌고 있는 후진타오현 국가주석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칭화대 출신이다. 5세대 지도자로 확정된 시진핑 국가 부주석까지 칭화대 출신이라고 알려지면서 칭화대가 2연승을 거뒀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칭화대가 이들의 정책적 지원만 받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의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은 양전닝, 리충다오 박사는 이미 칭화대의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유인 우주선 선저우 6호를 쏘아올린 기술자들도 대부분 칭화대 출신이다.
칭화대 출신인 왕융즈 원사는 우주선 총시스템 설계를 했고 왕신펑 원사는 깐수성에 있는 주취안 위성발사센터를 지휘했다. 원사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인정받은 최고 실력자로 중국 지방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수준을 설명할 때 "우리 성에는 몇 명의 원사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중국 과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선저우 우주선 계획의 중심에 있는 칭화대 출신은 20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이 대학 교수 2000여명이 핵에너지, 나노, 항공우주, 해양과학, 생명과학, 컴퓨터정보 분야에서 매년 3000여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특허만도 3711건에 이른다.
칭화대 관계자는 중국 과학원과 중국공정원의 원사 중에 칭화대 졸업생이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연구성과는 중국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대학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가 최근 발표한 2011 세계대학평가 5개 공학분야 순위 에서 카이스트는 5개 분야 대부분에서 51~100위 수준에 머물렀지만 칭화대는 10위권에 올랐다.
카이스트가 48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토목공학 분야에서도 칭화대는 17위를 기록했다.
◇실용주의 산•학연...칭화 홀딩스 학생들에게는 동기를, 학교에는 재원을
칭화대 졸업식 장면. 출처=경화시보
지난 12일 중국에 진출해 있는 대만 전자업체 폭스콘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칭화대에 10억위안(1670억원)을 기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폭스콘 궈타이밍 회장은 이 대학의 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분야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기증을 결심했으며 이를 통해 칭화대학과 기술과 인문 분야, 인재 육성과 학술 교류에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폭스콘은 그 전에도 3억달러를 기증해 칭화대와 공동으로 칭화-폭스콘 과학기술연구센터를 건립해 운용하고 있다. 이 연구센터는 지금까지 80여편의 논문과 700건의 특허를 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칭화대 산•학연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칭화대가 다른 대학과 다른 것은 많은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교수가 만들어낸 기술을 회사들이 바로 실용화 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되고 학교는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재원을 확보하는 일은 정부 기관이 아닌 자체 노력에 의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2003년 설립된 중국 칭화대의 기술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는 현재 자회사가 90여개에 이른다.
공격적이고 과함한 연구개발 투자도 눈에 띈다. 전체 교수진 4000명 중 3분의 2가량이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도 첨단 신기술 개발에 동참한다.
핵에너지와 마이크로 전지, 고속 정보망 등 3곳의 종합 연구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 중점 실험실의 10%가 이곳 칭화대에 있어 학생들은 많은 연구를 실제로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매년 진행되는 3000개의 프로젝트 중 150개 정도를 완성하는데 현재 칭화대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수만도 4000여개에 달한다.
<추정남 기자 qtingnan@asia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