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벤처의 사회적 이미지가 나빠지자 벤처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모 대학 벤처최고경영자 과정에 지원자가 줄자 과정 명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현 정부도 벤처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취임 후 한번도 벤처기업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벤처는 일시적 여론이 나빠지거나 사회적 관심이 소홀해졌다고 용도 폐기될 일회성 브랜드가 아니다. 벤처는 첨단기술과 신기술에 바탕을 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는 혁신 창업활동의 공동 브랜드다. 사막과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지난 십여 년간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서 어렵게 구축한 기술창업 생태계를 의미한다. 다소간 침체와 혼란이 있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폄하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벤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50년대 미국의 MIT, 하버드, 스탠포드 등 연구중심형 대학에서 정부의 지원에 의해 개발된 신기술의 상업화를 위한 자금조달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몇몇 선구적인 투자자들의 성공사례가 나타나자 수많은 벤처캐피탈이 설립되어 민간자금 조달에 의한 연구개발 성과의 상업화 메카니즘이 정착되었던 것이다. 그 후 벤처캐피탈은 미국인 특유의 개척정신, 정부의 우호적 투자여건 조성 등에 의해 발전했다.
이러한 대학기반 신기술 창업모델은 영국과 일부 유럽국가 및 일본에 의해 모방되었으나 미국과 같은 탁월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이스라엘, 대만의 성공모델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에도 국가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오늘날 대학기반 첨단기술이나 신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대대적으로 기울이고 있는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청화대, 북경대 등이 중심이 되어 수행해 온 교판(校辦)사업이 대학기반 창업활성화 모델이다.
우리나라에 벤처의 개념이 소개된 것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개발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한국기술진흥(KTAC)의 설립과 오늘날 KTB의 전신인 한국기술개발 주식회사의 설립과정에서였다. 정부는 기술중심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1986년 창업지원법을 제정하면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기술집약적 창업활성화에 필요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벤처캐피탈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 정책용어로 공식화 된 것은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제정이지만, 이미 일반적으로는 8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벤처기업이라는 용어는 역사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으며, 그 핵심기능은 첨단 신기술 기반 창업활성화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처(Venture)라는 영어 스펠링을 풀어보면 비전(Vision), 열정(Enthusiasm), 네트워크(Network), 신뢰(Trust), 독창성(Uniqueness), 시장대응성(Responsiveness), 그리고 마지막으로 탁월성(Excellence)이란 의미를 갖고 잇다. 따라서 벤처는 비전과 열정을 가진 창업자가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원을 조달하여, 독창적이고 시장대응성이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탁월한 기업가치를 실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벤처의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려면 벤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시장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벤처기업, 벤처캐피탈, 코스닥이 연합하여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큰 첨단기술이나 신기술 기반 사업에 도전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벤처 창업생태계를 살려야 한다. 당면한 청년실업의 해결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면서 동북아 중심 국가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벤처는 우선순위를 두고 육성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