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넘치게 “올 8% 경제성장·글로벌기업 육성”
네티즌들 “實한 총리報告, 국민 마음 움직였다”
5일 오전 7시50분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개막을 1시간10분 앞둔 시각, 광장은 이미 취재진과 전인대 대표들, 대회 방청객들로 붐볐다. 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전인대 참석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꺼내 인민대회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소득향상을 반영하듯 디지털카메라가 많이 눈에 띄었다.
위구르족·몽고족·강족 등 소수민족 대표들은 울긋불긋 화려한 색상의 민족 전통 의상을 입고 하나 둘씩 인민대회당으로 입장했다. 마치 큰 잔치에 온 하객들 같았다.
오전 8시57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필두로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우레 같은 박수 속에 서열대로 전체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우 위원장의 개막 선언에 이어 원 총리가 단상에 섰다.
“대표 여러분, 저는 이제 국무원을 대표하여 정부 업무보고를 하겠습니다.”
원 총리는 장장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정부업무보고’를 읽어나갔다. 만 64세인 원 총리의 업무 보고는 결연한 웅변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중간중간 터진 대표들의 큰 박수소리만이 10여 초씩 원 총리를 쉬게 했을 뿐이다. 한 외국기자는 “저 나이에 2시간 동안이나 저렇게 큰 목소리로 보고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이룩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 때문 아닐까”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올해도 안정적이고 비교적 빠른 경제 발전을 유지해나가겠다”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로 8%를 제시했다. 지난해 중국은 8% 경제성장 목표를 세우고 실제로는 9.9%를 달성했다. 최근 수년간 거의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달성할 자신도 없이 높은 목표치만 제시하고, 나중에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그런 ‘외화내빈’ ‘허장성세’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은 이런 전략으로 개혁개방 27여년 만인 지난해 미국·일본·영국에 이어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원 총리는 “중국 내부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도성장에 따른 양극화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치유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균형성장을 위해 제시한 국정 최우선 과제는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이다. 농업세를 폐지하고, 2년 안으로 농촌 초·중학생의 학비를 면제하겠다고 천명했다. 진훙윈(金洪雲) 인민대학 교수는 “우리는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앓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1인당 GDP 1700달러 단계에서 치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황씨라고 밝힌 장쑤(江蘇)성 대표는 “현 지도부가 중국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해서 잘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후 주석과 원 총리 등 중국 지도부는 검약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중국 국민들은 원 총리가 11년 넘도록 같은 겨울점퍼를 입은 사실에 감동했다. 그는 취임 이후 수시로 궁벽한 농촌과 탄광, 에이즈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찾아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며 ‘개선’을 약속했다. 후 주석은 작년 1년 동안 9차례, 20개국에 달하는 해외순방을 통해 에너지 확보 등 중국의 이익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주력했다. 베이징대학의 한 교수는 “중국의 관료사회에 부정부패가 심하지만, 저우언라이(周恩來)·덩샤오핑(鄧小平)에 이어, 후진타오·원자바오에 이르기까지 최고 지도부의 이런 솔선수범과 청렴함에서 중국 국민들은 희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대표들에게 심의안건으로 배포된 2006~2010년까지의 발전전략을 담은 ‘11차 5개년 규획 건의안’에서는 덩치만 큰 대국(大國)이 아니라 실력 있는 강국(强國)을 지향하는 발전전략이 뚜렷했다. 국방비는 작년 대비 14.7% 늘려, 18년 연속 두 자릿수의 증가를 보였다. 연구·개발(R&D) 예산을 19.2% 늘리고, ‘중국판 초일류 글로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대미무역흑자를 의식, 무역 비중을 줄이고 소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세계의 공장’에서 한걸음 나아가 ‘세계의 시장’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
이날 원 총리의 전인대 업무보고는 CCTV와 라디오, 인터넷를 통해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보고가 끝난 직후 신화통신 홈페이지와 신랑(新浪) 등 포털사이트에는 “실(實)한 총리의 보고,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총리, 당신을 믿기에 우리의 목표는 달성될 것입니다” “후 주석, 원 총리를 확고하게 지지한다. 참으로 무실(務實)하는 지도부” “중국의 미래 만세!” 와 같은 글들로 넘쳤다. 64세 중국 총리의 쩌렁쩌렁한 업무보고는 중국 국민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었다.
베이징=조중식특파원 jscho@chosun.com
입력 : 2006.03.05 22:07 45' / 수정 : 2006.03.06 01:11 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