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2005-10-10 = 베이징 이용욱 통신원] '한류인기는 홍보 때문' VS '한류 어쨌든 뛰어나다'
지난주는 중국 언론의 ‘항한론’ 보도가 국내에 소개돼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청룽(성룡,51)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발언의 취지가 ‘지한’의 의미였다고 밝히는 시간이 됐다.
‘한국을 똑똑히 알자’는 ‘지한론(知韓論)’으로 해석가능한 청룽의 방한 인터뷰 내용은 지난 8-10일에 중국 언론에 전면 보도됐으며 “청룽의 ‘항한론’은 한국을 본받자는 취지가 언론에 의해 왜곡 발표된 것”이라는 기사로 또렷이 전해졌다.
청룽이 중화권에서 ‘항한론’을 언급했으나, 다시 국내와 중국 언론에 포장지가 바뀐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그에 힘입어 중국의 ‘매체 소비자’들은 그간 머릿속에 그려온 한류 이미지를 다소 비판적으로 전환해보는 모티프를 확보하게 됐다.
계속될 여지가 충분한 중국에서의 ‘항한론’ 찬반양론은 앞으로 첨예한 대립 속에서 격렬히 맞서다가 다시 논쟁과 토론을 거쳐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한층 성숙된 길로 들어서게 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첫 결과물이 중국 언론을 통해 지난 8일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한류열풍이 가장 거센 쓰촨(四川)성의 주류 인쇄매체 청두상바오(成都商報)가 지난 7일 실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의 52%가 한류에 반대, 48%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86613333-1핫라인’ 전화응답으로 이뤄졌으며 20대의 대학생에서 70대 노인까지 150여명의 신문구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결과이다. 몇몇 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전화 인터뷰도 함께 이뤄졌다.
발표에 따르면 “벌떼처럼 몰려드는 한국드라마, 당신도 좋아합니까?”라는 물음에 52%가 범‘항한론’을 지지하고 나섰고 48%가 반‘항한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범‘항한론’은 한류는 규제가 마땅하다는 ‘반한론(反韓論)’, 한류를 더 신중히 다스리자는 ‘어한론(御韓論)’과 그밖에 ‘항한론(抗韓論)’ 등이 있으며 적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범‘항한론’ 52% 지지율>
지지자들은 “한류를 누르기 위해 노력하자” “우리 중국의 드라마를 더 많이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편적으로 나타냈다.
린(林)씨라고 밝힌 독자는 “소국 한국이 인구가 이렇게 많은 대국을 꿈속에서 헤매게 만들고 있다. 설마 중국에 인재가 없겠는가? 한류는 토론할 필요도 없다”며 쓴 소리를 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30세의 왕(王)씨는 “한국드라마는 규제돼야 한다. 극의 진행이 더뎌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 매체가 정력을 허비해 홍보해줄 필요까지 있느냐”며 중화민족의 문화를 널리 드높일 것을 요구했다.
한 시내 그릇가게 주인은 “한국드라마 인기는 홍보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작년에 ‘대장금’에 나오는 접시를 들여다 놨는데 올해 매체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비로소 동이 나고 있다”며 중국매체가 중국산을 지지하면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 독자도 “시청자들이 진정 좋아한다기보다는 요즘은 한국드라마를 봐야 유행을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결국은 매체를 탓했다.
<반‘항한론’ 48%의 지지율>
반‘항한론’은 한류를 본받자는 ‘학한론(學韓論)’과 한류만큼 신나는 것은 없다는 ‘합한론(哈韓論)’으로 나뉘며 각각 18%와 30%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국가간부로 있는 47세의 마(馬)선생은 “내 보기에 ‘대장금’ 참 잘 찍었다. 드라마 잘 안 보는 내가 여기 빠져들 줄 몰랐다. 한국스타에 대한 중국보도가 많고 중화권스타에 대해 한국언론 보도가 적은 것은 그저 한국보다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피지기 백전백승’에 ‘지기(知己)’가 빠져있다고 물음표를 던졌다.
교사로 일하는 50세의 류(劉)여사는 “복식과 음식 문화 등 모두 볼만해 한국드라마를 즐겨본다. 윤리와 도덕이 설교식이 아니라 연기자의 정밀한 연기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드라마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는 것도 신선하고 좋다. 중국처럼 매일 똑같은 얼굴이면 곤란하지 않겠나”는 ‘합한론’의 심중을 내비췄다.
보통 한류의 도덕적 감화 가치를 주장하는 이들도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한다. TV로 방송되기 전에 DVD를 구입하거나 대여해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이들은 “한국드라마는 문화 전승과 지향점이 아주 잘 구현된다”는 의견으로 한류에 대한 존중을 나타낸다. 또 “패션, 화장, 주택, 외모, 조형 등 시각적인 면이 뛰어나다”는 말도 여전히 언급한다.
‘학한론’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합리성이 있다”면서 선진적인 모든 것은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는 루쉰(魯迅)의 ‘나래주의(拿來主義)’를 들고 나선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진정 중국드라마를 진흥하려면 보다 대중적인 작품을 쏟아내야 할 것”이라며 한국을 배우자고 주장한다. “한류 규제는 대국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는 의견도 이따금 전해진다.
최근 이혼문제를 다룬 히트드라마 ‘중국식 이혼(中國式離婚)’의 시나리오를 쓴 왕하이링(王海鴒)씨는 “드라마의 질이 높으면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체 지원이 있기 마련”이라며 “드라마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서 검증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홍보 전략은 무척 중요하지만 작품이 좋지 않으면 홍보가 많이 돼도 실패한다”는 지론도 펼쳤다.
올해 중국 황금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CCTV드라마 ‘번쩍이는 검(亮劍)’의 장첸(張前) 연출자도 유사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들여오고 방영하고 홍보하는 것은 누구도 저지할 수 없다” “대중이 관심없는 것은 매체가 아무리 홍보해도 쓸모가 없다”면서 “결국 콘텐트로 경쟁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는 한류를 어떻게도 저지할 수 없으며 좋은 작품을 가지고 우리 대중과 대화할 수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먼저 나서는 지혜>
범‘항한론’과 반‘항한론’은 현재 이렇게 대립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어느 한쪽도 쉽사리 물러설 수 없는 ‘기득권’과 ‘이데올로기’(혹은 세계관)의 체계를 지녔다. ‘한류’가 메이커의 연속성, 지명도, 신뢰감, 만족도의 바탕에서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수출의 판로를 마련하며 확실한 메이커로서 중국 대중들의 기나긴 사랑을 받기위한 노력을 강구해야할 뿐 아니라 한 가지 잊혀선 안 되는 게 있다.
전환기의 고통을 받는 중국문화가 만들어낸 음미할만한 대중문화의 기호들-언제나 자유와 저항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추이젠(崔健)의 로큰롤, 음악으로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낸 ‘비욘드(Beyond)’의 인문주의, 서구의 영향 아래 물질․정신적 추구와 현실의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눈이 오지 않는 겨울(無雪的冬天)’과 정치가가 빚어낸 격동기의 서민들의 꿈과 가족애를 돌이키게 만든 ‘나의 형제와 자매(我的兄弟姊妹)’를 비롯한 많은 중국 대중음악, 영화와 드라마는 같은 인간끼리의 공통 관심사를 흡족히 충족시킬 만한 기반이 마련돼 있으며, 중국 대중문화가 더욱 폭넓게 받아들여져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잊혀져가는 가치들을 주워 모으게 만드는 통로는 더욱 활짝 열려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