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도 광산서 11년 … 보석 같은 인재 찾아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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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도 광산서 11년 … 보석 같은 인재 찾아내는 중국
[중앙일보 09.09.15]

베이징지질학원을 졸업한 원자바오(溫家寶)의 첫 직장은 오지에 위치한 간쑤성의 주취안(酒泉) 지질역학대였다. 1968년의 일이다. 그후 11년 동안 원은 기술자 신분으로 풍찬노숙을 하며 광산을 찾아 다닌다. 그런 그가 어떻게 중앙으로 발탁될 수 있었을까. 배후엔 인기가 없는지는 몰라도 능력만큼은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는 중국의 간부 발탁과 배양 정책이 도사리고 있다.

원자바오를 중앙으로 발탁한 인물은 쑨다광(孫大光) 지질광산부 부장이다. 그는 어떻게 원을 시험했을까. 첫 번째는 자신의 시찰에 수행시키는 방법이다. 함께 데리고 다니며 사람됨을 꼼꼼히 살핀다. 물론 쉴새 없이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문성에 대한 점검이다. 그 결과 원은 쑨 부장으로부터 ‘살아 있는 간쑤의 지도(甘肅活地圖)’라는 극찬을 받는다. 검증은 계속된다. 원을 민중 속으로 보내 일을 시키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본다. 다음엔 원과 엇비슷한 인재들을 모아 토론을 시킨다. 종합적 분석 능력을 체크하는 것이다. 이어 고위 간부들로 구성된 평가단에게 각 인재들에 대한 결산을 하도록 한다. 행여 자신의 판단에 오류가 있을까를 방지하는 절차다. 원의 총리 승진은 이 같은 검증이 무수하게 반복된 결과다.

중국에서 일반적인 당정 간부 승계는 전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후계세대를 ‘선발’해 ‘배양’하는 방법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간부들은 원자바오가 겪었던 것처럼 능력과 자질, 성과 등의 제반 사항에 대한 ‘고찰(考察)’을 받으며 승진하거나 도태된다. 온갖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그중에 가장 기본이 바로 능력이다.

그러나 능력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고, 특히 승진하기는 더욱 힘들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에게는 왕다오한(汪道涵)이라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는 쑹핑(宋平)이라는 후견인이 있었다. 지역과 학벌, 경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관시(關系)’가 필수적인 것이다. 상하이 세력인 상하이방(上海幇), 칭화대 출신자인 칭화방(淸華幇), 공청단 출신의 공청단파(共靑團派), 석유공업 계통의 석유파, 고급 간부들의 자제를 지칭하는 태자당(太子黨) 등이 다 그런 관시를 보여주는 예다.

관시의 요체는 원만한 인간관계에 있다.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반대자는 없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색무취의 은인자중이 최고의 덕목이 된다. 중국의 최고 지도부는 여러 시험을 거치고, 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능력을 보여야 하는 모순적 상황을 견뎌 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다. 그 과정을 통해 등장한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는 13억 중국을 착실하게 최강대국으로 부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능력을 충분히 과시하는 셈이다.

그러나 근년 들어 비교적 성공적으로 작동하던 중국의 엘리트 충원 체제에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는 부패 확산이다.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당서기 부패 사건이 대표적이다. 정치세력 내부의 집단 부패는 상호 비호를 통해 자기 세력을 부식시킴에 따라 정상적인 ‘선발’과 ‘고찰’이라는 기제를 작동치 못하게 한다. 둘째는 태자당 영향력의 급증이다. 80년대 경제와 문화 영역에 머물렀던 태자당의 영향력이 정치로까지 뻗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직할시 당서기의 부상이 그 예다. 태자당의 독특한 특권의식은 60년대 문혁 초기 고위층 자제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의 구호에서 잘 드러난다. 혈통론으로 잘 알려진 “부모가 혁명이면 자식도 혁명이고 부모가 반동이면 자식은 후레자식이다”는 구호가 그것이다. 태자당의 정치적 강화는 ‘당 내 당’으로서 공산당 내부의 특권 세력화로 귀결돼 공산당의 합리적인 엘리트 충원을 방해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까지 중국공산당의 성공은 나름대로 내적인 합리성을 갖는 선발제도를 통해 관리능력을 갖는 유능한 통치 엘리트를 선발한 데 있었다. 그러나 이 선발제도는 ‘인민’의 인정을 받는 절차적 정당성까지 부여받은 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합리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구한 중국 역사가 보여주는 건 왕조를 망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왕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인민’의 인정을 받으면서 동시에 능력 있는 지도자를 계속 선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중국의 미래가 걸렸다.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ahn4027@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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